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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0.09 이딸리아 요리계 스타 쉐프 박찬일의 좌충우돌 본토 체험기!
  2. 2009.06.04 사법권의 신성함은 국민이 준 것임을 알라! - 불멸의 신성가족

이딸리아 요리계 스타 쉐프 박찬일의 좌충우돌 본토 체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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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딸리아 요리계 스타 쉐프 박찬일의 좌충우돌 본토 체험기! 

  이딸리아 씨칠리아의 어느 시골식당에서 로베르또라는 이름의 대한민국 청년이 콩 튀듯 팥 튀듯 이리저리 좁은 주방에서 뛰어다니고 있다. 지중해의 태양이 말 그대로 ‘내리꽂혀서’ 지열이 50도를 넘는 이곳에서 수백 번 ‘로베르또, 로베르또, 로베르또!’ 불러대는 소리에 뛰어다니며 일하다 보면 어느새 밤이 된다. 옷은 땀에 젖고 마르기를 반복해 서걱거리고, 녹초가 되어 숙소로 돌아와 신발도 벗지 못하고 침대에 엎어진다. 귓가엔 여전히 이명이 들린다. “로베르또, 로베르또, 로베르또. 젠장, 로베르또!” 죽을 똥 싸는 오늘은 내일도 계속이다.

 

  

  <지중해 태양의 요리사> 요리사 박찬일이 이딸리아 삐에몬떼Piemonte의 요리학교 ICIF에서 공부한 후 시칠리아의 레스또랑에서 1 년간 죽도록 일하면서 겪었던 고군분투기를 적은 것이다. 국내에 돌아와 청담동의 ‘뚜또베네’와 가로수길 ‘논나’를 거쳐 현재 논현동의 이딸리아 레스또랑 ‘누이누이’에서 셰프로 일하는 그는 원래 중대 문예창작과에서 소설을 전공한 문학도였다. 잡지기자를 하던 그가 요리에 흥미를 느껴 1999년 30대 초반의 나이에 3 년간 이딸리아로 인생의 2막을 위해 떠난 것이다. ‘체험, 삶의 현장’을 방불케하는 현지에서의 생생한 체험과 잡지사 기자를 했던 문학도의 유려한 문체를 만났으니 글맛은 어림짐작해도 알만하다. 읽은 소감이 어떠냐고? 단순한 듯 복잡다난한 이딸리아 요리의 맛을 읽어서 느꼈다고 하면 부족한 설명일까? 더 이상의 표현은 불가하다. 

  이 책은 특별한 요리 이야기다. 휘황찬란한 화보와 듣도 보도 못한 재료가 레시피가 더해진 요리책도 아니고, 그렇다고 특급호텔의 스타쉐프가 미사여구로 버무린 요리사의 자서전도 아니다. 유쾌하고 생생한 말잔치로 엉성하고 부족한 듯 풍미가 깊은 이딸리아 요리의 참맛을 전하는 소설처럼 읽히는 ‘이딸리안 아나토미Italian Anatomy'다.

그가 일한 시칠리아의 레스또랑 ’파또리아 델레 또리‘는 중소도시의 일등 맛집 정도 되고, 로베르또를 가르치고 함께 일한 주방장 쥬제뻬 바로네Giuseppe Barone는 평생을 시칠리아풍 이딸리아 요리를 해온 토박이 요리사다. 우리식으로 바꿔 말하면 전주 한정식 집에 한식 요리사 자격증에 잉크도 마르지 않은 푸른 눈의 이딸리아인이 주방에 들어섰으니, 이들이 함께 일하는 자체가 시트콤인지도 모른다. 비좁고 무더운 주방 안에서의 로베르또의 좌충우돌 요리수련기에 책의 두세 장을 채 넘기지 못하고 미소가 번졌다. 

 

 

  글을 읽으면 난 섹시 여배우 모니카 벨루치가 출연했던 영화<말레나>의 바다가 걸쳐진 해안가 마을이 보이고 고즈넉하고 평화로운 낮풍경 속에 들어가 있다(로베르또가 씨칠리아까지 찾아간 이유는 <지중해>, <씨네마 천국>, <일 포스티노>와 같은 영화의 고즈넉함 때문이었다고 했다). 로베르또가 입을 떼면 비릿하고 짭쪼름한 봉골레(바지락) 스파게티와 크림 향 가득한 까르보나라 스파게티의 풍미가 읽히고, 후덥지근한 주방의 열기와 주방장 쥬제뻬의 욕섞인 고함과 제스쳐가 오감으로 느껴진다.  

  로베르또를 통해 이딸리아 요리가 프랑스 요리와는 다르게 투박한지를 알 것 같았고, 유럽인 중에 이딸리아인이 한국인을 가장 많이 닮았다는 세중世中의 말도 이해할 것 같았다. 프랑스 요리가 예술이면 이딸리아 요리는 생활이었다. 프랑스 요리가 빌딩숲이면 이딸리아 요리는 원시림의 자연이었다. 이딸리아 요리가 세 계단 정도 내게 가까워진 느낌은 이 책을 읽은 큰 소득이었다. 아무런 격이 없이 쉽고 재미있게 써내려간 로베르또의 글맛은 잘된 소설 못지 않게 뛰어나다. 그가 만들어낸 요리도 이런 맛일지 궁금해진다. 선선한 저녁 스파게티와 화이트와인을 생각하게 한 책이었다.    

PS : 저자인 로베르또, 아니 박찬일이 직접 출연해서 10가지의 이탈리아 요리를 선보이는 DVD가 초판에 한정되어 선물로 들어있다. 글처럼 맛깔나게 말하지도 않고, 올리버처럼 투박하고 거칠게 요리를 하지만 정말 먹고 싶을 만큼 맛있어 보였다. 이딸리아 요리에 관심있는 독자라면 일급 쉐프의 요리 솜씨를 친절한 설명과 함께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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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권의 신성함은 국민이 준 것임을 알라! - 불멸의 신성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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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신성가족 - 10점
김두식 지음/창비(창작과비평사)


이 책은 판사, 검사, 변호사, 법원 일반직 공무원, 경찰, 변호사 사무실 직원, 신문기자, 교수, 철학자, 시민단체 간사, 결혼소개업자, 비정규직 노동운동가, 각종 소송 경험자 등 모두 스물세명의 구술을 바탕으로 우리나라 사법 현실을 재조명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사법을 주된 탐구 대상으로 삼았지만, 사법을 통해 우리사회 전체? 모습을 분석하고자 시도한 책이기도 합니다. - 김두식



사법권의 신성함은 국민이 준 것임을 알라! 

어느 날 두 여인이 아기 하나를 놓고 서로 자기 아기라고 주장하여 솔로몬 왕의 판결을 받게 되었다. 서로 자기 아기라고 주장하는 두 여인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솔로몬 왕은 칼로 아기를 반으로 갈라 두 여인에게 나누어주라고 하였다. 왕의 명령을 받은 병사는 당장 시퍼렇게 날이 선 칼을 빼들고 아기를 거꾸로 높이 쳐들었다. 그러자 어머니는 울음을 터뜨리며 아기가 반으로 잘리느니 차라리 상대편 여인에게 주어도 좋으니 아무쪼록 죽이지 말아달라고 하였다. 왕은 칼을 멈추게 하였다. 그리고 아기를 울고 있는 여인의 품에 안겨 주며, 어머니라면 아기의 목숨을 먼저 생각하는 법이라고 말하였다. 그는 다른 여인을 궁 밖으로 끌어내게 하였다. [열왕기 상 3:16∼28] 

  유명한 솔로몬왕의 재판은 아이를 반으로 갈라 죽임으로서 진짜 엄마를 판단한다는 쉬운 결정이었지만, 진짜 엄마라면 아이를 죽임을 방관하지 않을 것이라는 모성에 의지한 재판이었다. 솔로몬 스스로도 누가 진짜 아이의 엄마인지 알 수 없음을 인정한 사례이기도 한데 이는 인간이 다른 인간의 죄를 판단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한 예이기도 하다. 우리는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고 말한다. 또 ’법 앞에서는 누구나 평등하다‘고 말한다. 응당 그래야 할 것인데, 실제는 나처럼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꽤 많다. 사실 여부를 알기는 쉽지 않다. 법으로써 사람 사는 세상을 다스리는 사람들과 일반인 사이에는 소통이 불가능한(최소한 그렇다고 생각하는) 너무나 큰 벽(편견일 수 있지만)이 가로막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벽은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외치면면서도 막상 앞으로 나서지는 못한다.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 행여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겁이 나서다. 법원의 존재이유는 당연하고 꼭 필요하지만 직접 만날(원고이든 피고이든) 일이 없으면 좋겠다는 것이 솔직한 속내다. 어쩔 수 없는 겁 많은 쥐새끼인 셈이다, 난. 

  그런 차에 방울을 들고 있는 한 사내를 발견했다. 사내의 이력도 재미있다. 왕년에 고양이였다가 다시 쥐로 돌아왔단다(지금껏 말한 고양이와 쥐는 ‘대면시의 위축감에 대한 표현’일 뿐이다. 설마 나를 누가 잡아먹겠는가?). 그리고 고양이였던 쥐가 고양이의 목에 방울을 걸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쥐들아, 너희가 알고 있는 고양이는 고양이 옷을 입었을 뿐 호랑이만큼 포악하지는 않아. 그리고 그리 무섭지도 않지. 얘들도 집에 가면 쥐로 변한단다. 가끔 호랑이 가죽을 입은 고양이들이 있긴 해. 하지만 전부는 아니지. 그러니 지레 겁먹지 말고 말 걸어봐. 안 잡아먹고, 실은 못 잡아먹어. 저희들도 쥐니까...” 전직 검사였으며 <헌법의 풍경> 등의 저술을 한 바 있는 김두식 씨가 김종철 씨와 함께 방울(책)을 만들었다. 방울을 만든 대장간은 창비(창작과 비평). <불멸의 신성가족>이다.  

 

 

   이 책은 판검사, 변호사를 비롯해 법조계와 각종 소송 경험자등 모두 23명의 구술(심층면담)과 저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나라 사법 현실을 재조명한 책이다. 다시 말해 법에 관련된 일반인들의 개인적인 면접들을 종합해 나름의 구체적 일반성을 찾고자 노력한 책이다. 23명의 이야기를 통해 문제점을 찾고 그 대안을 제시하고자 했다. 지극히 주관적일 수 있는 면접들의 종합에서 일반성을 찾는다는 점에서 신뢰성을 보장할 수준은 아니었지만, 꽤 선명도가 높은 망원경(부분을 조망함에 어울리는 단어다)으로 벽 너머의 세계를 조망하는 셈으로는 무리가 없었다. 저자가 알고 싶은 의문들은 나 역시 늘 궁금했던 사항들이었기 때문이다.  

1997년(의정부와 대전의 법조비리 사건)부터 법조계는 그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깨끗해졌다는데, 왜 시민들의 불신은 사라지지 않는 걸까?
변호사들은 사무실을 운영하기 위해 건당 최소한 500만원은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일반인들은 그 같은 최저 수준의 수임료도 너무 비싸다고 생각하는데, 적절한 수임료라는 것이 있기는 있을까?
법조계에 기생하는 브로커들의 문제는 과연 필요악일까, 아니며 근절해야 할 구조적인 악에 불과할까?

    저자는 모든 문장에는 “모든 판사(검사, 변호사)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모든 법원(검찰청, 변호사 사무실)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은 아니겠지만”이라는 단서가 붙어 있다고 생각해 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2008년 7월 기준으로 변호사 10,173명, 판사 2,352명, 검사 1,676명, 모두 14,201명인 선택받은 <신성가족>을 겨냥한 이야기인 만큼 구술자의 입에서 나오는 고발성 내용은 흠집을 내가에 충분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 명이 넘는 집단을 모아두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이 이야기는 당신 이야기다’고 말하는 것과 다름 아니다. 자성自省을 요구하는 저자의 의도가 담겨 있었다. 

  일부의 비리법조인들의 이야기, ‘썩은 사과’의 이야기는 책을 통해 독자가 살필 몫이다. 다만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썩은 사과’는 어느 사회에나 있듯 이곳에도 ‘냄새가 푹푹 날 만큼 충분히 썩은 사과’들도 있었다. 구술자들이 고백한 ‘썩은 사과들’의 부패 정도와 내용은 어느 할리우드 법정영화 못지않은 스토리로 가득한데, 그래서 무척 흥미로워야 할 스토리가 나와 내 지인들이 그 법정영화의 원고와 피고로 섰거나 설 수 있다는 생각에 흥미로울 수 없었고, 암울하고, 참담함마저 느끼게 했다. 정말 신성해야 할 사법계에도 ‘썩은 사과’가 존재하는 원인은 그들 역시 돈과 성공 앞에서는 흔들리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또한 그들 역시 퇴근 후엔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사람이기에 품게 되는 ‘人之常情’을 탓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사람이기 때문에 갖게 되는 약점을 보완하는 제도적 견제장치가 필요한 것이고, ‘썩은 사과’가 발견될 때마다 점점 더 보강해야 함은 물론이다.  

  저자는 일반인(국민)들의 사법계에 대한 불신에는 ‘의사소통의 부재’와 ‘원만함이라는 신성가족 이데올로기’가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진짜 엄마를 찾아낸 솔로몬 왕의 현명한 재판에서는 두 엄마의 주장을 경청했다는 전제가 있었다. 어쩌면 솔로몬 왕은 아이를 죽이는 판결을 내리기에 앞서 그들의 육성과 표정이 담긴 주장에서 진짜 엄마를 찾았을지도 모른다. 저자 역시 ‘그들만의 리그’에서 통하는 용어로 첨철된 글로 된 문서로 의사소통을 선호하는 사법시스템(메신저나 문자로 싸움을 해 본 사람은 자신의 답답함과 억울함을 어필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를 짐작할 것이다)을 지적했다.

물론 사법계가 현재도 살인적인 업무량으로 시달리고 있다고는 하지만 판검사의 대폭 증원하는 등의 시스템개선의 의지가 있다면 시도해서 값비싼 수임료를 주고 변호사를 사기 보다는 ‘국가기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는다면 ‘불신’은 해소될 수 있다고 보았다. 나아가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원만함, 즉 청탁을 거절할 수 있는 용기를 무너뜨리는 신성가족의 원만함은 우리사회 전체가 돌아가는 방식(좋은 게 다 좋은 것)과 맞물려 있어 바꾸는 것은 정말 어려운 문제라고 보았다. 
 

  그에 대해 신성가족 시스템을 해체시키는 출발점으로 ‘판검사에게 말을 걸라’ 저자의 해법은 흥미로웠다. ‘줄을 대고, 빽을 써서 그들과 닿아야 이긴다’는 국민의 불신은 지나친 편견일 수 있다. 전화 걸어줄 사람을 찾지 말고 직접 전화를 하고, 직접 면담을 신청하는 것. 그리고 변호사에게 소송 진행에 대한 상황을 듣고 내용을 요구하는 것은 정당한 권리임을 새삼 배운다. 하지만 과연 실천할 수 있는 용기가 내게도 있을까? 권리를 주장하다가 밉게 보인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의 셈으로 뽑아본 바에 의하면 인맥으로 칠 법조인이 한 명도 없는 85.8%의 시민들에게 사법사회는 캄캄한 미지의 세계이다. 그렇기에 권말에 제시하는 저자의 조언은 동굴 속 탐험에 앞선 촛불만큼의 크기로 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한 가지 소득(책 한 권을 읽으면서 얻는 소득치고는 너무 알량하지만)이라면 브로커들의 비기秘記였던 <한국법조인대관>이 시중에서 판매되고 있어 국민들도 손쉽게 이용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불멸의 신성가족>이라는 책의 존재만으로 사법계에 미치는 영향은 클 것이다. 면접자가 <신성가족>의 일원이고, 그들이 가리키는 손가락이 자신들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독자로서 사법계의 이모저모를 관찰함으로써 어느 정도 벽은 스스로 허물을 수 있는 좋은 계기였다.  

  같은 불신이라고 하지만 ‘국회의원에 대한 불신’과 ‘사법계에 대한 불신’과는 뉘앙스에서 차이가 있다. 국회의원은 국민 손으로 뽑은 국민 대표이기에 그 지위는 높여주되, 한 인간으로서의 의원은 같은 높이에서 바라본다(평범해진 이 사실은 위대한 민주화의 승리다). 하지만 법관에게는 그렇지가 못하다. 조금 다른 뉘앙스의 이유는 마치 우리가 시계를 만들고 시간에 철저히 얽매어 살 듯, 법이라는 ‘만인의 약속’을 만들고 그것을 해석해 줄 사람을 뽑았기에 이들에게 함부로 대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법이라는 ‘약속’을 존중하고 따르려 하기에 ‘법관’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 것(못하는 것도 아닌)이다. 사법계가 <신성가족>으로 불리는 이유는 사법고시를 패스한 뛰어난 머리나, 학력을 신성시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이 법을 신성시하기 때문이다. 사법계는 이러한 국민의 굳은 약속을 알아야 한다. 법으로써 판단하는 사람들 역시 법 앞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국민들 앞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알아야 하고, 국민들이 만든 약속의 무서움을 안다면 그들의 하소연에 더욱 ‘귀 기울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만약 솔로몬 왕이 두 엄마의 눈물이 담긴 진술 없이 문서로 판단했다면, 과연 어떤 평결을 내렸을까 생각하게 만들어준 책이었다.  

 

Written by Rich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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