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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1.19 인생 뭐 있어? 너 답게 살다 가란 말이야, 바보야 !
  2. 2010.01.17 최인호의 인연 - 당신의 인연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다시 일어시라라!

인생 뭐 있어? 너 답게 살다 가란 말이야, 바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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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위해 사는 법
카테고리 시/에세이
지은이 기타노 다케시 (씨네21,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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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뭐 있어? 너 답게 살다 가란 말이야, 바보야 ! 

  남의 장례식葬禮式을 가는 것은 책 열 권 읽는 것보다 낫다. 단 한 가지, ‘오래동안 잘 살고 싶다’는 욕망이 새삼 솟구치기 때문이다. 고인故人의 영전에서 ‘잘 사는 삶’을 추구한다니 이기적이고 아이러니컬한 일이 아닐 수 없지만, 이보다 더 생생하게 얻을 기회를 아직 만나지 못했다. ‘잘 사는 삶’이 호의호식好衣好食하고 부귀영화富貴榮華를 누렸다가 가는 삶을 말하는 거냐고 묻는다면, 아직 장례식장을 가보지 못한 자가 던진 질문일 것이다. 무엇인가 얻고자 두 주먹 불끈 쥐고 태어난 것이 인간의 탄생이라면, 운 좋다면 두 손 곱게 펴서 염하고 삼베 수의壽衣 하나 걸치고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 인간의 죽음임을 알게 되는 것이 장례다.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일까?

  ‘잘 사는 삶’의 욕망을 느끼는 또 다른 방법은 바로 ‘죽다가 살아나는 것’이다. 병에 걸려 생사를 넘나들다 완쾌되거나, 사고를 당해 저승 문턱까지 갔다가 돌아온 사람이라면 ‘잘 살고 싶다’고 절실하게 느끼게 된다. 

  어떤 이유이든 ‘죽다가 살아난’ 경우는 더욱 절실해진다. 제 과실로 위험에 이르렀으면서 마치 ‘새로 태어난 듯’ 감사하고 또 감사해진다. 문제는 이렇게 ‘살아있음’에 감사하는 마음이 얼마나 가는가 하는 것이다. 1년? 6 개월? 한 달? 잘 나가는 일본의 코메디언이 어느 날 오토바이 사고를 당했다. 자신이 ‘상처투성이에 얼굴도 찌그러진 인형 옷’처럼 느껴질 만큼 크게 다친 그는 사고 후 삶에 대해, 그리고 다가올 죽음에 대해 고민하며 병상일기를 썼다. 그 코메디언은 우리에게는 영화 <하나비><기쿠지로의 여름>의 감독으로 잘 알려진 ‘기타노 다케시’다. 그의 책이 심심찮게 나왔는데, 이젠 거슬러 1995년에 쓴 책까지 나왔다. 의미심장한 제목, <죽기 위해 사는 법>을 읽었다.   

 

  

  기타노 다케시는 일본에서는 독설가로 유명하다. 차이는 크지만 이해를 돕자면 우리나라의 김구라의 큰형 정도라 해야 할까? 마치 야쿠자나 된 듯 고압적으로 상대를 나무라고, 심지어 주먹질까지 해서 보기에 심란할 지경인데, 대리만족의 카타르시스인지 내재된 가학적 폭력성의 발현인지는 알 수 없지만 자국의 시청자(일본인)들은 눈물을 빼고 웃는다. 독특한 캐릭터는 책을 통해서도 느낄 수 있었다. 까칠하다 못해 전투적이고 혁명적인(책에서는 레디컬radical하다고 표현했다) 문장들은 좀처럼 글로 만나지 못한 것들이라 통쾌하기까지 했다(대상이 일본이 아니던가?). 하지만 남는 건 없다. 

  책을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건질 만한 부분은 전반부인 ‘1부 죽기 위해 사는 법’이다. 큰 사고나 병으로 말 그대로 ‘죽다가 살아본 사람’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들어 있다. 병원의 입원생활이란 것이 먹고, 싸고, 자는 것이 아니던가? (원래는 흰색이지만) 누렇게 탈색된 플라스틱 그릇에 고기반찬이 들어 있으면 ‘횡재한 기분’을 느끼게 하는 단순한 병원생활에 굳이 고무적인 것이 있다면 ‘생각할 시간이 많다는 것’이다. 잘 나가던 연예인이 병원에 누워 ‘단순한 생활’을 하면서 삶을 돌아보고, 죽음을 내다보면서 내일을 다짐하는 생각들에 공감이 많이 갔다.  

  "그 전까지 나는 삶이라는 것에 크게 집착하지 않았고, 언제 죽어도 상관없다는 소리까지 하고 다녔다. 하지만 이는 자살욕구와는 다르다. 딱히 제 발로 기꺼이 죽고 싶은 건 아니다. 다만 나에게 주어진 무거운 짐에서 언제 해방되든 상관없다는 마음은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구사일생이라 할 만한 상태에서 살아 돌아오고 보니 '간단히 자기 짐을 내려놓고 죽을 수는 없지.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냐'라고 누군가가 말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럼 앞으로도 계속 짐을 지고 살아가야 하나.

그래서 그다지 기쁘지 않았다. 기쁘지도 않아도 가치는 있다. 살아 있다는 가치 말이다. 그렇게 다행이라거나 행운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어쨌든 살아 있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도록 앞으로 얼마나 많은 것을 생각하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것이다. 거기서 실패하면 다시 살아난 의미가 없어진다. 끊임없이 그런 생각만 맴돌았다." 본문 17 쪽 

  덤덤하게 말하는 재생再生의 변辯에는 죽을 때 까지 ‘잘 살겠다’는 다짐이 뭍어 있다. 어차피 죽어지면 아무것도 없는 무無가 되지만, 살아 있는 동안은 살고 있기에 차라리 죽는 것보다 못한 삶은 살지 않겠다는 생각은 안면이 함몰되고, 사지가 찢어지는 고통을 통해 얻은 대오大悟였다.  

  다케시는 사고 전 자신은 한마디로 ‘망나니’였다고 말했다. 성의 없이 방송을 하고 많은 돈을 받아서는 ‘언니’들의 품을 찾아다니며 밤을 새워 술을 마셨고, 그런 자신을 비난하는 팬이나 언론에 오히려 더 큰 목소리로 독설을 퍼붓는 바보 같은 망나니였다. 언제 죽어도 상관없다고 여기저기 말하고 다니면서 강한 척 했지만, 걸레 같은 몸뚱이가 되어 남의 손을 빌어 밥을 얻어먹고, 용변을 해결하는 ‘단순한 동물’이 되어버린 자신을 바라봤을 때 ‘나 역시 사람 위에 사람이 아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국내에서 소개된 기타노 다케시의 모습은 교통사고 이후의 모습이다. 가끔 안면이 씰룩거리고 약간은 밸런스를 잃은 부자연스러운 모습은 사고 이후의 후유증이다. 지인들과 의사는 그에게 안면신경 수술을 권했지만 그는 거부했다. 온전히 의사가 하자고 한 대로 ‘마음대로 다 알아서 해주십시오“라고 의지하는 것은 자신의 존재가 없어지는 듯 해 싫었다고 했는데,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 사건을 평생 기억하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나름대로 이 교통사고를 재산으로 삼고 살아갈 의지가 있었다. 안면신경이 낫지 않아도 딱히 관계없다. 어느 정도라면. 수술하면 흉터도 남지 않는다. 예전처럼 고칠 수 있다고 한다. 그럼 정신도 옛날대로 돌아갈 수 있지 않은가. 그건 싫다고 말했다. 기껏 이런 사고를 당해서 생각도 바뀌었고 인생에 대해 여러 가지로 고민하게 되었는데, 얼굴이 원래대로 돌아가면 정신도 원래대로 돌아갈지 모른다. 그건 싫었다. 일그러진 얼굴을 거울에 비춰보면서 생각이 다시 바뀔 수도 있으니까, 이대로 흔적으로 남기고 싶다. 그런 의지가 있었기에 신경수술은 고사하기로 했다.” 본문 29 쪽 

  이 대목은 내게 ‘발상의 전환’이었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또 다른 삶의 방식이었다. 인생을 살면 반드시 찾아오는 ‘아픔과 슬픔, 사고와 괴로움’에 대해 보통 사람들은 굳이 기억하지 않으려 애쓰며 산다. 그런 경험이 있기 전의 모습이 ‘원래의 모습’인 듯 안 그런 척하고 살려 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것만은 아닌 것 같다. 내 생에 찾아온 것들이라면 그 역시 ‘내가 감싸 안고 살아가야 할 몫’인거다. 그렇게 살아갈 때 비로소 온전히 나다운 삶을 사는 것이다. 애써 감추려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안고 살기. 그게 다른 사람이 아닌 내 삶에 있던 일이었으니까. 생각해보면 어쩌면 가장 단순하고 명쾌한 삶의 방식일 수 있다. 그런 일이 있다 손치더라도 그게 나인 것을 누가 어쩔거냔 말이다. 멋들어진 이 한 마디가 이 책에서 건진 ‘나를 흔든 한마디’였다. 

  나머지 부분은 ‘살아남은 자가 바라본 우스운 세상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원래 독설가인 그인지라 표현은 무식하고 살벌하다. 말도 콩도 되지 않는 것들 투성이고, 모순덩어리였다. 하지만 그의 말을 따라 읽다 보면 통쾌한 무엇을 발견한다. 내가 사는 세상을 바라보면서 늘 속으로 하던 말들, 정말 허물없는 지인들과 술자리를 한다면 술의 힘으로 거침없이 배설하고 싶은 ‘독설들’이었다. ‘네 나라도 별 수 없구나’ 싶어 위로가 되고, ‘네 말이 내 말이다’ 싶어 공감을 했다. 하지만 읽고 난 후엔 뱉어낸 담배연기마냥 흩어져버렸다. 원제목도 ‘다케시의 죽기 위해 사는 법’이다. 하지만 설명이 부족하다. '다케시의 나답게 죽기 위해 나답게 사는 법'이 더 어울린 제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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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호의 인연 - 당신의 인연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다시 일어시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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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호의 인연
카테고리 시/에세이
지은이 최인호 (랜덤하우스코리아,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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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인호의 인연 - 당신의 인연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다시 일어시라라! 

  최인호가 집필을 중단했다. 최소한 ‘샘터사’에 매월 402회를 연재하며 36년 하고도 반년을 이어온 장수연재소설 <가족>만은 그랬다. 원인은 ‘암’이었다. 2008년 연재를 잠시 중단했다가 지난 해 3월 재개했었지만 10월호를 끝으로 연재를 끝냈다. 소설<가족>은 소설판 <전원일기>요, 한국판 ‘월튼네 사람들’(30여 년 전 매주 방송하던 미국 드라마)이다. 한 사람의 인생이 ‘한 질의 대하소설’이라면, 가족의 이야기는 어떻겠는가? 바람잘 날 없는 사건과 에피소드 속에서도 항상 끝은 훈훈하고 정겨운 가족애家族愛를 느끼게 하는 국민소설이다. 이 소설이 공감을 얻는 이유는 ‘우리집에서도 일어났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최인호의 글을 읽으며 지난 날 ‘우리의 그 날’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마치 옆집 최씨 아저씨네 이야기를 담장 너머로 엿들으며 ‘앞으로 있을지도 모를 그 날 이렇게 하고 싶다’고 배우게 한다. 

 

 

   하지만 소설<가족>의 백미는 최인호의 입담이다. 그는 타고 난 글쟁이다. 글이라기보다는 ‘말’을 읽는 기분, 그래서 아이에서 노인까지, 무식쟁이에서 긴 가방끈에 이르기까지 정겨이 읽힌다. 정좌할 필요도 펜을 들고 읽을 필요도 없다. ‘말’을 듣는데 그런 것이 대체 왜 필요하단 말인가? 그냥 고개를 들어 책에 박힌 글에 눈을 대면 된다. 그러면 술술 읽힌다. 좀 더 읽다보면 중저음의 개구쟁이 같은 최인호의 목소리가 들린다. 아뿔싸, 그런 그가 글쓰기를 중단했다. 타고난 재담꾼이 입을 다문 것이다. 대신 조용히 책 한 권으로 그 변辨을 대신했다. <인연因緣>을 읽었다.

 

 

   인연은 만남이다. 그리고 만남을 인식하고 괘념掛念하면서 인연은 시작된다. 그래서 인연은 앎이고, 기억이고, 추억이다. 그리고 사랑이다. "우리는... 추하고 멍청하고 따분한 자신으로부터 벗어나 아름답고 똑똑하고 재치있는 사람과 함께 하고 싶어서 '사랑'을 한다."는 알랭드 보통의 말처럼 우리가 인연이라 인식하고 기억하며 추억하는 것은 내가 갖지 못한 무엇을 가진, 그래서 똑똑하고 멋진 그를, 그녀를, 그것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인연>은 최인호가 사랑한 사람과 물건, 공간 그리고 일들을 기록해 놓은 수필집이다. 지난 해 펴냈던 <산중일기>가 나, 최인호를 돌아보는 글이었다면, 이번 글은 스스로 ‘나는 아름다운 팔불출’이라고 말했듯 거의 평생 ‘가족’의 인연을 맺은 사람들을 이야기 했던 그가 ‘또’ 사랑하는 인연들을 이야기 했다. 

  지금의 최인호에게 ‘인연’은 그리움이다. 스치고 지나갔던 순간의 기억이 시간이 흐르고서야 인연인줄 새삼 깨닫고 그리워진다. 몸에 병을 달고 시간의 흐름을 감지하기 시작한 그에게 세상은 모두가 인연이고 담고 싶은 그림이었다. 그가 돌아본 인연들은 모두가 아름답고 소중했다. 가장 먼저, 그리고 많이는 역시 ‘가족’이다. 어머니에 대한 사랑은 연인의 그것보다 더 지극하고 간절했다. 세상 어느 자식 안 그럴쏘냐마는 기억이 정말 날까 싶은 ‘당신(어머니)과의 소중한 순간’들을 묘하게도 기억하고는 서술하는 것만으로도 둔해서, 뚱해서, 혹은 창피해서 채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하는 우리네와는 사뭇 달랐다. 아버지와 형제들, 그리고 아내에 대한 마음은 단 몇 줄에도 사랑이 뚝뚝 뭍어난다.  

  “그래도 어머니를 만날 때마다 인사와 동시에 다리를 주무르는 일은 언제나 되풀이되었는데, 그때마다 내가슴이 아팠던 것은 어머니의 다리가 점점 더 말라간다는 사실이었다. 다리를 못쓰시게 되고부터는 말라가는 속도가 더욱 빨라져서 돌아가실 무렵에는 뼈만 남아 있었다. 다리를 주무르다가 나는 몇 번이고 울곤 했다. 어머니의 다리에서 생명이 희박해져가고 있는 걸 나는 손바닥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제 두 사람은 내 곁을 떠났다. 내가 사십여 년 동안 줄곧 안마로 모시던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제 내 곁에 없다. 아직도 내 손에 남아 있는 그 촉감, 그 살의 느낌, 살아 숨 쉬던 그 생명력, 어머니의 부드러운 살결, 매듭을 꺾을 때마다 뼈마디가 분질어리는 그 경쾌한 소리, 유난히 따뜻하던 어머니의 체온, 그 모든 감촉들이 내 손안에 분명히 남아 있는데도 두 분은 내 곁을 떠나고 안 계신다.

“인호야, 어디 있니? 다리를 좀 주물러다오.”

  가끔 한밤중 잠에서 깨어 멀건 얼굴로 창밖을 보고 있으면 어디선가 나를 부르는 아버지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본문 275 쪽 

  내가 초등학교 일학년이나 되었을까... 독감에 학교를 조퇴하고 돌아온 적이 있다. ‘끄응’ 소리가 절로 날 만큼 앓는 나에게 내 엄마는 누런 양은 대야에 찬 물을 담아 유난히 희고 흰 타올을 적셔 열로 인해 강바닥같이 터버린 입술을 적시고, 정갈하게 접어 머리에 얹어주셨다. 차가운 각성 뒤에 오는 은근한 서늘함에 위로받아 잠이 들었나보다. 깨고 보니 안방 풍경은 그대로인데 있어야 할 내 엄마가 보이질 않았다. 두 세평 남짓의 방안이 학교 운동장만큼 커 보였고 휑 하는 바람소리마저 들리는 했다.

  난 울었다. 혼자 남은 무서움 때문이 아니라 혼자 남겨진 그 느낌에 울음이 터졌다. 서러움, 난생 처음 든 그 기분은 서러움이었다. ‘우왕’하고 울던 것이 곡을 하듯 늘어지고 잦아들만 하면 끊어질까 또 목청을 높여 울었다. 내 엄마가 얼마나 먼 곳에 있을까 가늠하며 ‘나 여기 있다’고 외치는 울음에 내 귀가 아팠다. 깨어나면 떠먹일 찬거리를 사러 나갔다 온 내 엄마는 “내 새끼, 언제 깬거야. 어휴 그래. 혼자 있어서 운거야?” 하며 잰걸음으로 달려와 나를 안아 등을 두드려줬다. 톡.톡.톡. 그 두드림은 ‘그래 내가 네 마음을 안다’였다.

  더 이상 누릴 수 없음은 그리움이 된다. 단 한 번이라도 더 느끼고 싶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목소리와 숨결, 그리고 따뜻한 기운은 최인호에게 사무치는 그리움이 된다. 그의 손바닥이 기억하는 부모의 느낌들은 ‘그래 내가 네 마음을 안다’는 교감의 잔상이리라. 읽다 보면 그 간절함에 나마저도 울컥 울컥 속이 상해진다. 

  인연의 시작이 만남이면 끝은 헤어짐이다. 최인호는 이 책으로 소중한 인연들에게 ‘내가 너희를 기억하고 있다’고 말을 걸고 있다. 사람 좋은 배우 안성기, 넉살 좋은 영화쟁이 배창호, 애틋한 사랑 이해인 수녀님, 그리고 삼라만상의 풍경을 만드는 자연까지. 심지어 적막마저도 ‘내가 너희를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모두를 사랑하고 있었다.

 글을 읽다가 문득 미치 앨봄의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이 생각났다. 파킨슨 병으로 병상에 누워있는 모리선생은 어느 날 지인들을 모두 불렀다. 자신이 떠난 후 듣지 못할 ‘애도의 글’을 미리 듣고 싶어서였다. 지인들의 낭독에 때로는 웃음으로, 한 줄기 울음으로 말없이 답하는 모리선생은 슬프도록 행복해했다.

  이 글은 어쩌면 최인호의 미리 써둔 연서戀書인지 모른다. 사랑은 먼저 주는 것이고 표현해서 드러낼 때 완성되는 것이라면, 그는 자신의 사랑들에게 글로써 표현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 글을 지으며 많은 미소와 눈물을 흘렸으리라. 하지만 그 순간 만큼은 행복했으리라.  

  “아아, 나는 돌아가고 싶다.

  갈 수만 있다면 가난이 릴케의 시처럼 위대한 장미꽃이 되는 불쌍한 가난뱅이의 젊은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그 막다른 골목으로 돌아가서 김유정의 팔에 의지하며 광명을 찾고 싶다. 그리고 참말로 다시 일.어.나.고.싶.다.“ 본문 266 쪽 

  ‘병중인 그‘라는 사실을 몰랐을 때 나는 지난 해에 이어 ’또‘ 수필집이 나왔다는 소식에 불뚝 화가 났다. <잃어버린 왕국>과 <해신>을 통해 나라를 걱정하고, <별들의 고향>, <도시의 사냥꾼>등을 통해 시대의 아픔을 지닌 청춘들을 이야기하던 그가 짧은 숨의 ’수필집‘이냐 싶었다. 한국 현대문학의 한 기둥인 그에게는 우리의 오늘을 대신 고민하고 위로를 해줘야 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코맥 매카시나 필립 로스처럼 이순耳順의 최인호만이 뱉어내야 할 글들이 아직 남아있다고 생각했다. 그가 남겨야 할 대단원의 ’완성작‘을 은근히 기대했던 터라 부아가 나서 하마터면 이 책을 읽지 않을 뻔 했다. 

  최인호에게 요구한다. 일어나시라. 천막 안에 청중이 그득한데 연사가 등장하지 않는다면 혼이 나야 한다. 단 한 명의 청중이라고 천막 안에 있다면 연사는 아플 자격도 없다. 당신은 아직 토하고 쏟아내야 할 말들이 많다. 툭툭 털고 일어나 당신 특유의 여유로운 미소로 천막안으로 들어오시라 요구한다. 어서 빨리 돌아오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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